오귀스트 로댕

오귀스트 로댕

1840–1917 · 프랑스 · 현대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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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1877년, 당시 36세로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던 조각가 한 사람이 브뤼셀에 이어 파리에서 실물 크기의 남성 누드상을 선보였다. 찬사는 이내 비난으로 뒤집혔다. 몸이 너무나 정확하게, 마치 숨 쉬는 듯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었기에 비평가들은 로댕이 부정한 방법을 썼다고, 즉 살아있는 모델 위에 직접 석고를 발라 형을 떴다고 단정했다. 쉬르물라주라 불린 이 혐의는 사기에 가까운 것이었다. 격분한 로댕은 조사를 요구했고, 자신의 모델이었던 벨기에 청년 병사를 증인으로 세우고 사진까지 제시해 결백을 입증받았다. 이 스캔들은 오히려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그 사실성이야말로 핵심이었다. 로댕은 이전 조각가들이 감히 다루지 못했던 방식으로 살과 근육을 다루었고, 엄지 자국과 거친 표면을 그대로 남겨 빛이 스칠 때마다 표면이 움직이는 듯 보이게 했다. 1880년 프랑스 정부는 그에게 평생을 바치게 될 위촉을 맡겼다. 계획 중인 미술관에 세울 거대한 청동 문으로, 주제는 단테 <신곡>의 지옥에 떨어진 자들이었다. 그는 끝내 <지옥의 문>을 완성하지 못했지만, 그 위를 기어오르는 수많은 군상 속에서 개별 인물을 따로 떼어내 확대하곤 했다. 원래 지옥의 고통을 내려다보는 시인 단테로 구상되었던, 생각에 잠긴 채 앉은 한 남자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모든 도전이 보상받은 것은 아니었다. 1891년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의 기념상을 의뢰받은 로댕은 몇 년을 들여, 실내복을 두른 채 이목구비조차 뚜렷하지 않은 거칠고 육중한 형상을 내놓았다. 이를 주문한 문인 협회는 형체를 갖추지 못한 졸작이라며 완전히 거부했고, 로댕은 석고상을 집으로 가져갔다. 그것이 청동으로 주조되어 대중 앞에 세워진 것은 그의 사후 20여 년이 지난 1939년, 파리의 라스파유 대로에서였고, 지금도 그 자리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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