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압카르 발타자르
1880–1909 · 루마니아 · 사실주의, 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 상징주의, 아르 누보, 티네리메아 아르티스티커
이야기
1907년 압카르 발타자르는 부쿠레슈티의 돔 지붕 연주회장인 루마니아 아테네움에 작품 126점을 걸었다. 그의 생애에 단 한 번 열린 개인전이었고, 회화와 소묘 옆에 도자기, 포스터, 무대 장치, 의상 디자인까지 놓여 그가 얼마나 폭넓게 작업했는지를 보여 주었다.
그는 부쿠레슈티의 넉넉지 않은 아르메니아계 집안 출신으로, 그 도시의 미술학교에서 아카데미 화가 조르제 데메트레스쿠 미레아에게 배웠다. 그곳에서 그를 가르친 미술사가 알렉산드루 치가라-사무르카슈가 그의 눈을 루마니아 민속 미술로 돌려놓았다. 1904년부터는 비평도 썼는데, 처음에는 이오안 그로제아라는 필명을 썼다. 젊은 화가들이 농촌 풍경으로 존경받던 니콜라에 그리고레스쿠를 끝없이 흉내 낸다고 비판했고, 민속 그릇을 본보기로 삼은 루마니아 도자기를 주장했다. 화가 슈테판 루키안이 함께 세운 전시 단체 티네리메아 아르티스티커, 곧 '예술 청년회'와도 꾸준히 전시했다.
가장 잘 알려진 두 점의 캔버스는 루마니아 국립미술관에 있다. 1906년 작 〈룸너리커의 죽음〉은 가난한 교회에 바칠 초를 사려고 돈을 모으고 다녀 몰다비아에서 기억된 19세기 걸인의 주검을 눕혀 보인다. 1907년 작 〈농민들〉은 무겁고 굳은 얼굴의 시골 사람들을 그린 그림으로, 대농민 봉기가 일어난 바로 그해에 그려졌다.
모교의 장식미술 교수직에 지원했을 때 그가 낸 작품들이 심사 전시에서 사라졌고, 자리는 화가 코스틴 페트레스쿠에게 돌아갔다. 발타자르는 1909년 9월, 옛 그림의 복원을 배우려고 파리행을 준비하던 중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스물아홉 살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