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스탕스 마이어
1775–1821 · 프랑스 · 신고전주의
이야기
1803년, 콩스탕스 마예라는 젊은 프랑스 여성 화가가 피에르폴 프뤼동의 제자가 되었다. 프뤼동은 나폴레옹 시대의 이름난 화가로, 부드럽고 꿈결 같은 우의화로 알려져 있었다. 둘 사이에 자라난 것은 드문 것이었다. 어찌나 긴밀하게 작업했던지, 프뤼동이 구도를 스케치하면 마예가 그것을 자기 손으로 완성된 그림으로 옮겼기에, 누구의 붓인지 가려내기가 지금도 어렵다.
두 사람은 파리 소르본 근처의 예술가 거주 구역에서 여러 해를 나란히 살았다. 프뤼동에게는 아내가 있었고, 그것이 재능과 재능의 진정한 동반이었음에도 마예 자신의 이름은 그의 그늘에 남았다. 오랫동안 그의 작품으로 상찬받아 온 여러 그림이 이제는 대부분 그녀의 손에서 나온 것으로 여겨진다.
1820년 프뤼동의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마침내 재혼할 수 있는 몸이 되었으나, 그는 거절했다. 마흔다섯 안팎에 점점 절망에 빠져들던 마예는 1821년 5월, 두 사람이 함께 쓰던 화실에서 스스로 목을 그었다. 프뤼동은 무너졌다. 그는 그녀가 이젤에 남긴 화폭을 완성해 이듬해 그녀를 기리며 살롱에 내걸었고, 자신도 채 두 해가 지나기 전에 눈을 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