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수아 조제프 엠
1787–1865 · 프랑스 · 신고전주의, 아카데믹 미술
이야기
1859년, 일흔한 살의 프랑수아조제프 엠은 파리 살롱에 연필 초상 64점을 출품했다. 모두 프랑스의 국립 아카데미들을 아우르는 프랑스 학사원의 동료 회원들이었다. 미술계의 주류를 그 안의 한 사람이 그린 셈이었다. 엠은 30년째 학사원 회원이었고 그 산하 예술 아카데미의 회장도 지냈다.
그는 프랑스 동부 벨포르 출신으로, 아버지가 그곳에서 소묘를 가르쳤다. 열다섯 살에 파리의 저명한 역사화가 프랑수아앙드레 뱅상의 화실에 들어가 젊은 오라스 베르네와 함께 배웠고, 1807년에는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친 테세우스를 그린 작품으로 이탈리아 유학을 위한 국가 장학 제도인 로마상을 받았다.
파리로 돌아온 그는 공공 건물의 커다란 벽을 맡는 화가가 되었다. 복고된 부르봉 왕정이 주문한 성경 장면, 순교, 왕실 의식 같은 그림이었다. 루브르에는 베수비오 산이 유피테르에게서 폼페이를 묻어 버릴 불을 받는 천장화를 그렸고, 하원 회의실을 장식했으며, 파리의 노트르담드로레트 성당에서도 작업했다. 낭만주의자들은 그를 구식이라며 비웃었고, 훗날 루브르의 큐레이터 장피에르 퀴쟁은 그를 아마도 프랑스에서 전통 회화를 대표한 마지막 인물이라고 불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