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개지
345–406 · 동진 · 중국화, 동진 시대 미술
이야기
4세기, 동진의 수도 건강, 곧 오늘날의 난징에 있던 한 사원이 새 전각을 지을 시주를 모으고 있었다. 고개지라는 젊은 화가가 백만 전을 내겠다고 했는데, 무일푼인 사람에게는 터무니없는 액수였다. 그가 청한 것은 빈 벽 하나뿐이었다. 며칠에 걸쳐 그 벽에 불교의 거사 유마힐을 그리되 눈만은 그리지 않은 채 두었다가, 자신이 눈동자를 찍는 모습을 처음 보러 오는 이들에게 입장료를 받겠다고 알렸다.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약속한 액수가 채워졌으며, 이 일화는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고개지는 진나라 궁정에서 벼슬했고 중국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화론 몇 편을 남겨, 인물의 생명은 모두 눈에 깃든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눈동자를 맨 마지막에, 정성을 다해 찍었다. 당대 사람들은 그를 세 마디로 요약하여 재주가 으뜸이고 그림이 으뜸이며 어리석음이 으뜸이라 일렀는데, 마지막 말은 그가 유명했던 어린아이 같은 순진함을 가리킨다.
그의 손에서 나온 작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오늘날 전하는 것은 후대의 모본으로, 그중에서도 이름난 것이 「여사잠도」다. 궁중의 여인들이 덕을 훈계받는 장면을 그린 비단 두루마리로, 지금은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있다. 학자들은 현존본을 그의 사후 몇 세기 뒤에 이름 모를 손이 베낀 것으로 보지만, 그 가늘고 흐르는 듯한 선이야말로 대대로 중국 화가들이 인물을 그리는 본보기로 삼아 배운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