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한스 로이

1490–1531 · 스위스 · 북유럽 르네상스


이야기

1510년 무렵, 취리히 출신의 젊은 화가가 뉘른베르크에 나타나 당대 독일 최고의 거장 알브레히트 뒤러의 공방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한스 로이는 몇 해 뒤 고향으로 돌아와 도시에서 으뜸가는 화가가 되었다. 제단화와 종교화를 맡는 한편 수채로 거친 산악 풍경을 그렸는데, 이는 자연 자체를 독립된 주제로 발견해 가던 당대 독일 화가들, 곧 도나우파의 화풍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다 그를 둘러싼 세계가 뒤바뀌었다. 취리히는 종교개혁가 훌드리히 츠빙글리의 근거지가 되었고, 그의 간소한 프로테스탄티즘은 그려진 성인상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교회의 주문이 끊겼고, 1523년에는 츠빙글리의 추종자들이 도시의 종교화를 파괴했는데 그 상당수가 로이 자신의 작품이었다. 성화를 그리던 화가는 순식간에 그림을 그려 줄 대상을 거의 잃었다.

생계를 위해 그는 용병으로 나섰다. 1531년 10월 24일, 그는 취리히의 개신교도와 가톨릭 주들 사이의 무력 충돌인 제2차 카펠 전쟁에서 구벨 언덕 부근에서 싸우다 전사했다. 마흔 살 남짓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작품 가운데 하나가 1519년의 '동물들 사이의 오르페우스'로, 생명이 우글거리는 어두운 숲의 장면은 그가 얼마나 독특하고 창의적인 풍경화가가 되어 있었는지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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