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앙투안 와토
1684–1721 · 프랑스 왕국 · 로코코
이야기
1715년 무렵 루이 14세의 72년에 걸친 치세가 끝나고, 파리는 그 뒤를 이은 섭정기의 한결 가볍고 쾌락을 좇는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플랑드르 접경 지역 발랑시엔 출신, 페인트공의 아들이었던 장앙투안 바토는 그 시대의 분위기를 프랑스에서 그림을 그리던 그 누구보다 잘 포착해냈다. 1717년 프랑스 아카데미는 그만을 위해 새로 만든 범주, '페트 갈랑트(우아한 연회)의 화가'로 그를 받아들였다. 반쯤은 실제 풍경 같고 반쯤은 무대 배경 같은 공원에서 우아하게 차려입은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고 음악을 연주하는 장면을 그린 화가에게 붙여진 칭호였다.
바토는 성인이 된 뒤 거의 내내 결핵을 앓았고, 자신이 젊은 나이에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1719년 그는 당대 가장 명망 높은 의사 중 한 명이었던 리처드 미드에게 치료받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안고 런던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영국의 기후도, 미드의 치료도 그의 폐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고, 그는 전보다 더 나빠진 상태로 프랑스로 돌아왔다.
노장쉬르마른으로 돌아온 그는 화상이었던 친구 에드메 제르생의 집에 머물렀고, 1720년 며칠에 걸쳐 파리 퐁 노트르담에 있던 제르생의 화랑을 위한 간판을 그렸다. 손님들이 그림을 둘러보는 모습을 담은 이 캔버스는 오늘날 그의 마지막 주요작으로 여겨진다. 그는 1721년 7월 18일, 서른여섯의 나이로 제르생의 품 안에서 숨을 거두었다.
작품
작품 40점
목욕하는 디아나장앙투안 와토, 1715
무도회의 즐거움장앙투안 와토, 1717
프랑스 극장의 사랑장앙투안 와토, 1716
이탈리아 극장에서의 사랑장앙투안 와토, 1716
여자 모험가장앙투안 와토, 1713
섬세한 음악가장앙투안 와토, 1717
키테라섬으로의 출항장앙투안 와토, 1710
마법사장앙투안 와토, 1713
사랑의 축제장앙투안 와토, 1718
프랑스 희극배우들장앙투안 와토, 1720
이탈리아 희극배우들장앙투안 와토, 1720
사랑의 교훈장앙투안 와토, 1716
참새 둥지를 훔치는 자장앙투안 와토, 1712
사랑의 음계장앙투안 와토, 1717
피에르 크로자 공원의 나무 사이로 본 풍경장앙투안 와토, 1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