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 페터 하젠클레버
1810–1853 · 프로이센 왕국 · 뒤셀도르프파, 풍속화, 사실주의
이야기
1843년 봄, 프로이센 당국은 쾰른의 자유주의 신문 『라인 신문』을 폐간시켰습니다. 얼마 전까지 젊은 카를 마르크스가 편집을 이끌던 신문이었습니다. 같은 해 뒤셀도르프의 풍속화가 요한 페터 하젠클레버는 〈독서실〉을 완성했습니다. 지금 베를린 구 국립미술관에 있는 이 그림은 독서 클럽의 신문에 몰두한 중산층 남자들을 보여 주는데, 뒤쪽의 촛불과 화면 한가운데 놓인 새로운 램프가 그들을 비춥니다.
1848년 혁명 직전의 긴장된 시기, 이른바 3월 전기의 독일인들은 이런 클럽에서 소식을 읽고 논쟁했으며, 하젠클레버는 1830년대부터 신문 읽는 사람들을 그려 왔습니다. 그가 이름을 알린 것은 유머 덕분이었습니다. 뒤셀도르프 미술 아카데미 원장 빌헬름 폰 샤도는 그의 재능을 의심했고, 하젠클레버는 2년 만에 아카데미를 떠났습니다. 이후 결국 야경꾼이 되는 만년 대학생을 그린 희극시 『욥시아데』의 장면들이 인기를 얻었고, 1840년에는 바이에른 국왕 루트비히 1세가 그중 한 점을 사들였습니다.
1848년, 풍자는 정치가 되었습니다. 하젠클레버는 민주파 시민군의 부지휘관을 맡았고, 뒤셀도르프의 새로운 예술가 협회 '말카스텐'의 탄생에 힘을 보탰으며, 시 의원들 앞에 선 노동자 대표단을 그린 〈시 참사회 앞의 노동자들〉을 그렸습니다. 그는 1853년 마흔세 살의 나이로 뒤셀도르프에서 장티푸스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