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웨인

1860–1939 · 영국


이야기

1884년 1월, 루이스 웨인은 누이들의 가정교사였던 에밀리 리처드슨과 결혼했고, 얼마 뒤 그녀에게 유방암이 발견되었습니다. 투병하는 동안 피터라는 흑백 새끼 고양이가 곁을 지켰고, 웨인은 그녀를 기운 나게 하려고 그 고양이를 몇 번이고 그렸습니다. 에밀리는 1887년 1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웨인은 훗날 자기 경력의 토대는 피터 덕분이라고 썼습니다.

이미 1886년 크리스마스에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는 그의 「새끼 고양이들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실었는데, 11개의 장면에 고양이 150마리 남짓이 등장하는 그림이었습니다. 몇 년 사이에 그의 고양이들은 두 발로 서고, 옷을 입고, 학교에 다니고, 다과회를 열며 연감과 잡지, 1,000종이 넘는 그림엽서를 채웠습니다. 소설가 H. G. 웰스는 그가 고양이의 스타일, 고양이의 사회, 고양이의 세계 전체를 만들어 냈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웨인은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림을 헐값에 팔고 저작권을 넘겼으며, 어머니와 다섯 누이를 부양했기 때문입니다.

1924년, 수년간 불안정하고 의심 많은 행동이 이어지자 가족은 그에게 정신이상 판정을 받게 했고, 그는 런던 남부 스프링필드 정신병원의 빈민 병동에 수용되었습니다. 웰스도 지지한 공개 호소가 있은 뒤 1925년 베슬렘 왕립병원으로, 1930년에는 세인트올번스 근처의 냅스버리 병원으로 옮겨졌고, 1939년 7월 4일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동안에도 그는 계속 그림을 그렸습니다. 말년의 무늬 가득한 고양이 연작이 조현병으로 무너져 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습니다. 실제로는 정신과 의사 월터 매클레이가 1939년에 그중 여덟 점을 사서, 각 그림이 언제 그려졌는지에 대한 근거도 없이 직접 그 순서로 배열한 것입니다. 오늘날 일부 연구자들은 진단 자체를 의심하며, 냅스버리에서도 웨인은 무늬 고양이와 함께 평범한 고양이를 계속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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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작품 3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