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프만 십자가형의 대가
신성 로마 제국 · 북유럽 르네상스, 고딕
이야기
1344년 프라하는 대주교좌로 승격되었고, 2년 뒤에는 훗날 황제가 될 카를 4세가 보헤미아 왕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 프라하의 화가들은 이탈리아를 열심히 바라보고 있었고, 그 무렵의 작은 패널화 한 점이 이름 모를 화가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예전 소장자인 베를린의 수집가 리하르트 폰 카우프만의 이름을 따 '카우프만 십자가형'이라 불리며, 지금은 베를린 회화관에 걸려 있습니다.
이 패널은 높이가 67센티미터에 불과하며, 아마도 작은 접이식 제단화의 가운데 부분이었을 것입니다. 그 좁은 화면 안에 화가는 세 개의 십자가가 선 붐비는 골고타 언덕을 담았습니다. 십자가 아래에는 슬퍼하는 이들과 병사들이 있고, 인물들은 이탈리아식으로 깊이감 있게 단축법으로 그려졌습니다. 이런 유형의 골고타 장면으로는 보헤미아 회화에서 알려진 가장 이른 예이며, 학자들은 날카로운 선묘와 선명한 색채에서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본보기도 읽어 냅니다.
이 대가가 어디에서 활동했는지는 지금도 논쟁 중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그를 보헤미아, 그리고 남부 보헤미아의 시토회 수도원을 위해 제단화 연작을 그린 비시브로트의 대가 주변과 연결합니다. 다른 학자들은 빈 근처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과 관련된 오스트리아 공방에 그를 두며, 이 패널의 제작 연대로는 1340년 무렵부터 1350년 이후까지 여러 견해가 나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