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파엘리노 델 가르보
1466–1524 · 피렌체 공화국 · 르네상스
이야기
오랫동안 미술사가들은 라파엘리노 델 가르보를 서로 다른 세 화가라고 믿었습니다. 1500년 무렵 피렌체 그림들에는 어떤 것에는 Raphael de Caponibus, 어떤 것에는 Raphael Karli라는 서로 다른 서명이 있었고, 연구자들은 이름마다 따로 경력을 세웠습니다. 나중에 문서 연구가 이들을 다시 한 사람으로 합쳤습니다. 그는 1466년 무렵 피렌체 남쪽 시골에서 라파엘로 데이 카를리라는 이름으로 태어났고, 일찍 부모를 잃고 피렌체 귀족 가문인 카포니 집안에서 자랐으며 그 성도 함께 썼습니다. '델 가르보'는 가장 나중에 붙은 이름으로, 1510년대에 그가 공방을 빌렸던 가르보 거리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수사이자 화가였던 필리포 리피의 아들 필리피노 리피에게서 배웠고, 1490년대에 스승을 따라 로마로 가서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 카라파 예배당의 프레스코를 도왔습니다. 피렌체로 돌아온 뒤에는 맑고 밝은 방식으로 제단화를 그렸는데, 지금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지금 루브르에 있는 1511년의 〈성모 대관〉이 그 가운데 있습니다.
그 뒤의 이야기는 한 세대 뒤에 피렌체 예술가들의 전기를 쓴 화가 바사리가 그다지 너그럽지 않게 전합니다. 바사리에 따르면 라파엘리노는 시작이 끝보다 좋았고,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값싼 일을 너무 많이 맡았으며, 결국 교회 자수 밑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 밑그림 가운데 몇 점이 남아 있는데, 자수를 위해 그린 수태고지 천사의 카툰이 지금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