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엔더

토마스 엔더

1793–1875 · 오스트리아 제국, 치스라이타니엔 · 낭만주의, 풍경화


이야기

1817년 합스부르크 가문의 대공녀 레오폴디나가 포르투갈 왕세자 페드루와 결혼해 브라질로 떠났고, 오스트리아는 과학자 일행을 함께 보냈습니다. 그 공식 화가로 뽑힌 사람이 빈 미술 아카데미에서 풍경화를 공부하던 23세의 학생 토마스 엔더였습니다. 오스트리아 외무장관 메테르니히가 막 그의 수상작 유화를 사들인 참이었고, 그를 추천했습니다.

한 해가 채 안 되는 동안 엔더는 리우데자네이루와 그 주변에서 700점이 넘는 소묘와 수채화를 그렸습니다. 거리, 항구 풍경, 농장과 숲, 그리고 일하는 노예 아프리카인들의 모습입니다. 이 그림들은 그 시절 리우를 보여 주는 풍부한 기록이며, 지금은 빈 미술 아카데미의 판화 전시실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유럽으로 돌아온 그는 메테르니히를 따라 로마에 가서 1823년까지 국가 장학금으로 머물렀습니다. 그동안 쌍둥이 형제 요한 네포무크 엔더는 초상화가이자 역사화가로 자기 길을 걸었습니다. 1828년 토마스는 황제의 동생 요한 대공의 궁정 화가가 되었습니다. 대공은 자신이 사랑한 알프스 지방을 화가들에게 기록하게 했고, 1837년에는 엔더도 대공을 수행해 이스탄불과 그리스까지 여행했습니다. 그 뒤 그는 1851년까지 아카데미에서 풍경화를 가르쳤습니다. 벨베데레에 있는, 오스트리아 최고봉 그로스글로크너와 그 아래 파스테르체 빙하를 그린 풍경은 바로 그 알프스 시절인 1832년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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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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