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헬름 라이블
1844–1900 · 프로이센 왕국 · 사실주의
이야기
1869년, 프랑스 사실주의의 거장 귀스타브 쿠르베가 국제 미술전을 위해 뮌헨에 왔다가, 스물다섯 살 난 그곳 화가 빌헬름 라이블의 작품을 진심으로 칭찬했다. 그 힘으로 라이블은 파리로 떠났지만, 1870년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터진 전쟁이 그를 고향으로 영영 돌려보냈다.
그다음에 그가 한 일은 예술의 중심지에서 아예 등을 돌리는 것이었다. 그는 바이에른의 작은 마을들에 정착해, 남은 생을 주위의 농민들을 거의 눈 한 번 깜빡이지 않는 듯한 정확함으로 그리는 데 바쳤다. 옷의 솔기 하나, 손마디 하나, 닳은 기도서 한 권에까지 제 몫을 주면서. 가장 널리 알려진 그림 '교회의 세 여인'은 세 세대의 시골 여인이 한 좌석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담았고, 완성하는 데 삼 년 반쯤 걸렸다. 작업 도중, 교회 안에서 그리도록 허락해 준 본당 신부가 세상을 떠났고, 후임 신부는 그를 내쫓았다. 바이에른 섭정공이 몸소 나선 덕분에야 라이블은 다시 안으로 들어가 그림을 마칠 수 있었다.
이 그림은 그가 아직 서른여덟 살일 때 온 독일에 그의 이름을 알렸다. 말년에는 건강이 무너지고 붓질도 느슨해져, 젊은 날의 그 법랑처럼 매끈한 마무리에서 멀어졌다. 그는 1900년, 자신이 그린 농촌 마을들 속에서 일생의 대부분을 보낸 채 세상을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