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퇴니

1888–1949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트리아 · 표현주의


이야기

1948년 3월 4일, 뉴욕의 한 창고에서 불이 나 전시회를 위해 모아 두었던 빌헬름 퇴니의 회화와 종이 작품 약 천 점이 불탔습니다. 그것은 그가 평생 해 온 작업의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는 이듬해인 1949년 5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퇴니는 1888년 오스트리아 남부의 그라츠에서 태어났습니다. 뮌헨 미술 아카데미에서 공부했고, 기존 단체에서 갈라져 나온 미술가 단체인 뮌헨 신분리파의 창립 멤버가 되었으며, 소묘가 알프레트 쿠빈과 평생의 우정을 맺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뒤 1923년에는 그라츠 분리파의 초대 회장이 되었습니다. 1931년 파리로 이주했고, 193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파리 대주교 베르디에 추기경의 초상화로 금메달을 받았습니다.

뉴욕은 그보다 먼저 그의 마음을 끌었습니다. 그는 1933년에 맨해튼을 방문했고, 1936년 판지에 그린 벨베데레의 〈맨해튼 풍경〉은 그가 그곳으로 이주하기 2년 전의 이스트강을 보여 줍니다. 1938년 그는 미국 화가 프랭크 헤르만의 딸이자 유대인이었던 아내 테아와 함께 이민을 떠났습니다. 1940년대에 그의 작품은 브루클린 미술관과 시카고 미술관에서 전시되었고, 1942년부터는 뉴욕의 유력 화랑 크뇌들러가 그를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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