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와 『신곡』의 열 가지 장면

단테와 『신곡』의 열 가지 장면


상세 정보

제작 연도
1843
기법
유채
크기
232.5 × 176.5 cm

이야기

1840년 7월, 피렌체에 살던 외국인 세 사람이 복원가를 고용해 바르젤로 예배당 벽의 회칠을 걷어냈습니다. 그 아래에서 단테의 얼굴이 나왔습니다. 시인이 죽고 한 세대 안에 그려진 얼굴이었습니다. 이 발견은 유럽 전역에 알려졌습니다. 두 해 뒤 작센 왕의 궁정화가 포겔 폰 포겔슈타인은 로마에서 이 작품에 착수했고, 미술관 기록은 그 출발점이 바로 새로 드러난 그 초상의 습작이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가 그 얼굴 둘레에 만든 것은 회화보다 가구에 가깝습니다. 종이에 유화로 그린 화면을, 오르비에토 대성당 정면을 본뜬 금박 목조 고딕 구조물에 끼워 넣고, 가운데에 옥좌에 앉은 단테를, 양옆 벽감에 교황과 황제를, 그 주위에 『신곡』의 열 장면을 배치했습니다.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괴테의 『파우스트』와 함께 세 점으로 구상한 것 중 하나였습니다. 1844년 피렌체에서 공개되자 토스카나 대공이 사들였고, 이후 아카데미아와 크루스카 학회, 심지어 토목 관청까지 옮겨 다니다가 1971년에야 피티 궁전의 근대미술관에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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