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str vyšebrodského oltáře? · PD
베베르지의 성모
상세 정보
이야기
1345년 무렵, 보헤미아는 전성기를 맞고 있었다. 카를 4세 치하의 프라하는 유럽의 큰 수도로 떠올랐고, 곧 자체 대학과 대주교를 갖게 된다. 화가의 이름은 전하지 않아 이 패널화를 따라 그저 '베베르지 성모의 대가'로 불린다. 템페라로 그린 이 목판은 오랫동안 브르노 외곽 베베르지 성 근처에 걸려 있었다. 성모는 아기 예수와 뺨을 맞댄다. 보헤미아 화가들은 이 다정한 도상을 이탈리아와 비잔틴 본보기에서 가져와 한결 부드럽게 그렸다. 그녀 뒤의 금빛은 하늘이 아니라, 성스러운 인물을 일상의 시간 밖에 두던 당시의 관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