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콘스탄티누스의 기진
상세 정보
이야기
이 벽이 그려지기 80여 년 전, 인문주의자 로렌초 발라는 ‘콘스탄티누스의 기진장’이 위조문서라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이 문서는 황제가 교황 실베스테르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로마와 제국의 서쪽 절반을 교황들에게 넘겨주었다고 주장했습니다. 1440년 아라곤의 알폰소 왕을 섬기던 발라는 그 라틴어를 낱낱이 따져, 콘스탄티누스 시대의 로마인이라면 쓰지 않았을 단어와 칭호들을 찾아냈습니다. 그의 논고를 처음 인쇄해 펴낸 사람은 독일 인문주의자 울리히 폰 후텐이었는데, 레오 10세에게 바치는 조롱 섞인 서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1520년 마르틴 루터가 그것을 읽었습니다.
그런데도 메디치 가문의 교황들은 1523년과 1524년 무렵 이 이야기를 홀의 마지막 장면으로 그리게 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클레멘스 7세의 얼굴을 한 실베스테르 앞에 무릎을 꿇고, 로마라는 도시를 나타내는 작은 금빛 조각상을 바칩니다. 바티칸 박물관은 인물들을 잔프란체스코 펜니의 솜씨로 보지만, 19세기 학자들은 제작을 줄리오 로마노에게 돌렸습니다.
배경에는 지금은 사라진 건물이 남아 있습니다. 옛 성 베드로 대성당의 내부로, 기둥이 길게 늘어선 신랑과 후진의 모자이크, 사도의 무덤을 둘러싼 꼬인 기둥들이 보입니다. 이 프레스코가 그려질 때만 해도 서 있던 이 건물은 17세기 초에 헐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