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프레드 시슬레
1839–1899 ·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 인상주의
이야기
1898년,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 알프레드 시슬레는 프랑스 국적을 신청했다. 그는 십 대 시절부터 프랑스에 살며 40년간 그 나라의 강과 마을을 그렸고, 초기 인상주의 전시회들에서 모네, 르누아르와 나란히 작품을 선보였다. 신청은 거부되었다. 그는 자신의 인품을 보증하는 경찰 보고서까지 첨부해 두 번째로 신청했지만, 병이 먼저 그를 덮쳤고, 그는 1899년 1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영국 국적을 그대로 지닌 채 세상을 떠났다. 그의 부모는 파리에서 수입업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이 어긋남은 그의 경력 전체를 관통한다. 시슬레는 스위스 출신 교사 샤를 글레르의 파리 화실에서 훈련받으며 그곳에서 르누아르, 모네, 화가 프레데리크 바지유를 만났고, 1870년대 초에는 사실상 오직 풍경화만을, 그것도 그 무리 중 누구보다 꾸준히 야외에서 대상을 직접 보고 그렸다. 1870년 보불전쟁 중 아버지의 수입업이 파산하면서 그림은 더 이상 사적인 취미가 아니라 그의 유일한 수입원이 되었고, 그 수입은 남은 평생 빈약한 채로 남았다. 아르장퇴유의 센강과 모레쉬르루앙 주변 다리들을 옅은 초록과 흐릿한 분홍으로 그린 풍경화들은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대체로 팔리지 않았다.
시슬레는 아내 외제니가 세상을 떠난 지 몇 달 뒤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는 오랜 벗 모네에게 두 자녀를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모네는 다시 화상 조르주 프티를 설득해 자녀들의 생계를 위해 시슬레의 그림들을 경매에 부치게 했고, 그로부터 1년 안에 그중 한 점인 포르마를리의 홍수 장면이 4만 3천 프랑에 팔렸다. 이는 생전에 그가 작품 한 점으로 벌어들인 것보다 훨씬 큰 금액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