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닌 프로하즈카

안토닌 프로하즈카

1882–1945 · 체코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헝가리 · 표현주의


이야기

1938년 여름, 독일과의 위기가 깊어 가던 무렵, 안토닌 프로하즈카와 그의 아내인 화가 린카 프로하즈코바는 브르노 마사리크 대학교 법학부의 벽 하나를 통째로 덮을 대작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주제는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주는 프로메테우스였고, 캔버스는 약 7.5미터에 13미터 크기입니다. 제막식은 1938년 12월 16일, 뮌헨 협정으로 체코슬로바키아의 국경 지대가 독일에 넘어간 지 몇 주 뒤에 열렸습니다. 그림은 지금도 법학부 대강당의 정면 벽을 채우고 있습니다.

프로하즈카가 이 고전적인 프로메테우스에 이르기까지는 긴 여정이 있었습니다. 1907년 그는 에밀 필라, 보후밀 쿠비슈타 등이 속한 프라하의 젊은 화가 모임 '8인회'의 일원이었고, 이들은 에드바르 뭉크와 프랑스 야수파를 본보기로 삼았습니다. 몇 년 뒤 그는 입체주의로 방향을 틀었고, 1913년 베를린에서 그해의 대규모 전위 미술 전시였던 제1회 독일 가을 살롱에 입체주의 정물화를 냈습니다. 벨베데레의 〈남자의 두상〉도 1913년 작품입니다.

1924년부터 그는 브르노에서 소묘를 가르쳤고, 1920년대 중반 이후 그의 그림은 더 차분하고 고전적으로 바뀌어 고대의 인물과 신화로 채워졌습니다. 독일 점령기에는 19세기 체코 시인 카렐 야로미르 에르벤의 민속 발라드에 삽화를 그렸고, 공화국 초대 대통령 토마시 마사리크의 작은 기마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전쟁이 끝나고 몇 주 뒤인 1945년 6월 브르노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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