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샤를 메니에
1763–1832 · 프랑스 · 신고전주의, 역사화
이야기
1793년 초, 반프랑스 폭동으로 로마 프랑스 아카데미의 젊은 장학생들이 로마에서 쫓겨났다. 그중 한 명인 파리 출신의 샤를 메니에는 1789년, 젊은 화가에게 국가가 주는 최고의 상인 로마상을 받은 인물이었다. 그는 이후 몇 달을 피렌체에 머물며 세례당에 있는 기베르티의 청동 문을 소묘했다. 그해 말 그는 혁명 정부가 다스리는 파리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재단사의 아들이었고, 코메디 프랑세즈의 배우였던 형이 화가 프랑수아앙드레 뱅상 밑에서 배우는 비용을 댔다. 나폴레옹 시대에 그는 국가의 주요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1807년 나폴레옹 미술관 관장 비방 드농이 아일라우 전장의 황제를 그린 그림을 공모하자 그도 참가했다. 우승은 앙투안장 그로에게 돌아갔고, 메니에의 스케치는 심사위원단이 우승작 다음으로 주목한 작품들 가운데 하나였다. 이후 그는 나폴레옹의 베를린 입성을 그렸고, 1812년에는 에슬링 전투 뒤 로바우섬으로 돌아오는 황제를 그렸다. 두 그림은 지금 베르사유에 있다.
부르봉 왕가가 돌아오자 그는 장식화로 방향을 돌렸고, 그가 그린 천장화 몇 점은 지금도 루브르 관람객들의 머리 위에 있다. 출생 연도는 자료에 따라 1763년 또는 1768년으로 나오며, 2008년에 출간된 작품 총목록은 1763년을 택했다. 그는 1832년 파리에서 콜레라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내 역시 콜레라로 숨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