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니시오스 초코스
1820–1862 · 이오니아 제도 합중국, 그리스 · 이오니아파, 낭만주의
이야기
만년의 디오니시오스 초코스에게 그리스 정부는 1821년 독립전쟁을 치른 사람들을 그리는 일을 맡겼다. 앉아 줄 사람이 아직 남아 있는 동안에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는 명단의 일부까지 진행하다 1862년에 죽었고 연작은 미완으로 남았다. 완성된 두상들은 아테네 국립역사박물관으로 갔고, 그 습작들은 오늘날 베나키 박물관과 쿠틀리디스 컬렉션에 나뉘어 있다.
그는 1847년 왕국 밖에서 아테네로 왔다. 태어난 자킨토스는 영국 보호 아래 있던 이오니아 제도에 속했고, 그곳의 회화는 끊기지 않은 이탈리아 전통을 지니고 있었다. 첫 수업은 섬의 사제이자 화가였던 니콜라오스 칸투니스에게 받았다고 전해지며, 1844년에는 베네치아 아카데미에서 루도비코 리파리니 밑에 있었다. 역사화가였던 리파리니는 초상과 과거의 주제에 집중하라고 권했다. 베네치아에서는 1845년과 1846년에 작품을 냈다.
그가 옮겨 간 왕국은 세운 지 15년으로 자신을 보여 줄 그림이 모자랐고, 초코스가 그것을 공급했다. 1823년에 전사한 술리의 지휘관 마르코스 보차리스의 죽음, 그리고 초상에 이은 초상, 새로 생긴 아테네 대학 강당에 걸 교수들의 얼굴도 있었다. 1856년에는 교사를 양성하던 아테네 여학교 아르사케이온의 소묘·회화 교수가 되었다. 영웅들 옆에서 이오니아의 소재도 계속 그렸는데, 그중 한 점인 코르푸 여인과 젊은 남자를 그린 그림은 아테네 국립미술관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