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드바르드 이스토
1865–1905 · 핀란드 대공국 · 사실주의
이야기
1899년 2월 차르 니콜라이 2세는 제국 전체에 해당하는 법률을 핀란드 의회의 동의 없이 제정할 수 있다는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당시 핀란드는 러시아 제국 안의 자치 대공국이었고, 그곳에서 이 칙령은 헌법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같은 해 에드바르드 이스토는 단 한 점의 그림으로 응답했습니다. 「공격」에서는 러시아의 쌍두독수리가 나라를 의인화한 여인 '핀란드의 처녀'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법전을 빼앗으려 합니다.
이스토는 스웨덴 국경 가까운 북쪽 끝 알라토르니오의 농가에서 아홉 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1888년 헬싱키로 와서 공예학교에서 공부했고, 나중에는 국가 장학금으로 베를린에서도 배웠습니다. 처녀의 모델은 알라토르니오 출신 여성 엠마 퀴외스태야였습니다.
이 그림은 공개적으로 전시할 수 없었습니다. 1899년 가을 헬싱키 카이보푸이스토 지구의 바닷가 별장에서 몰래 공개되었고, 차르의 정치경찰인 러시아 헌병대가 이를 알아차리자 이스토는 그림을 스웨덴을 거쳐 독일로 옮겼습니다. 베를린의 한 회사가 1만 장이 넘는 복제화를 찍었고, 엽서판도 뒤따랐습니다. 이스토는 1905년 39세의 나이로 헬싱키에서 세상을 떠났고, 그림은 지금 핀란드 국립박물관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