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젠 들라크루아
1798–1863 · 프랑스 · 낭만주의
이야기
1830년 7월 말, 파리 시민들은 사흘간 바리케이드를 쌓고 싸워 왕 샤를 10세를 몰아냈다. 당시 32세였던 외젠 들라크루아는 그 광경을 곁에서 지켜보았고, 자신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고 느껴 붓으로 그것을 대신하기로 했다. 그해 겨울 그는 한 손에 삼색기를, 다른 손에 총을 든 가슴을 드러낸 여인이 시신들을 넘어 노동자와 거리의 소년들 무리를 이끌고 화약 연기 속을 나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실제 있었던 일주일간의 시가전을, 프랑스가 봉기할 때마다 지금도 되돌아보는 이미지로 바꾸어놓았다.
들라크루아는 프랑스 회화의 절반, 즉 정확한 데생보다 색채와 움직임과 감정을 신뢰하는 쪽을 이끌었으며 앵그르는 그 반대편에 있었다. <자유의 여신> 이후 2년 뒤 그는 자신의 색채에 불을 붙인 경험을 하게 된다. 1832년 그는 프랑스 외교 사절단과 함께 모로코를 여행했고, 북아프리카의 빛과 의상, 말과 궁정이 마치 계시처럼 그를 사로잡았다. 그는 여러 권의 스케치북을 빠른 수채화로 채웠고, 이 반년간의 여정에서 얻은 소재를 이후 30년에 걸쳐 70점이 넘는 작품으로 풀어냈다.
그는 우정에서도 낭만주의자였다. 그는 작곡가 프레데리크 쇼팽과 가까웠고 피아노 앞의 그를 그리기도 했으며, 작가 조르주 상드와도 친분이 있었다. 생애의 상당 기간 그는 일기를 썼는데, 지금도 화가가 회화에 관해 쓴 글 가운데 가장 예리한 것으로 꼽힌다. 말년에 그는 파리 생쉴피스 성당의 한 예배당을 벽화로 채웠는데, 그중 하나는 천사와 야곱이 씨름하는 장면으로, 파리 근교 숲에서 스케치한 나무들 사이에 배치했다. 그는 1861년에 이 작업을 끝냈고 2년 뒤 세상을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