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들 디커-브란다이스
1898–1944 ·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 바우하우스
이야기
1944년 가을, 프라하 북쪽의 테레지엔슈타트 게토에서 프리들 디커-브란다이스는 자신이 가르친 아이들이 그린 그림 약 4500점을 여행 가방 두 개에 담아 숨겼습니다. 남편은 막 동쪽으로 가는 이송 열차에 실려 간 참이었습니다. 그녀는 다음 이송에 자원했고, 1944년 10월 9일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에서 살해되었습니다. 남편은 살아남았고, 가방들도 무사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림들은 프라하 유대인 박물관에 넘겨졌습니다.
1942년 12월 게토로 이송된 그녀는 아이들에게 몰래 미술 수업을 했고, 저마다 자기 그림에 이름을 적게 했습니다. 그림이 남아 있는 아이 약 660명 가운데 550명가량이 홀로코스트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그림 일부는 지금 프라하의 핀카스 시나고그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녀 자신이 받은 교육은 당시로서 가장 앞선 것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1898년 빈에서 태어난 그녀는 스위스 화가이자 색채 이론가인 스승 요하네스 이텐을 따라 바이마르의 바우하우스로 가서 1919년부터 1923년까지 직물, 판화, 제본, 타이포그래피를 공부했습니다. 빈으로 돌아와서는 바우하우스 동료 프란츠 징거와 디자인 작업실을 운영했습니다.
1934년 공산주의 활동으로 체포된 뒤 빈을 떠나 프라하로 갔고, 1936년 파벨 브란다이스와 결혼했습니다. 벨베데레의 '프라하, 블타바강 풍경'은 바로 그해 작품으로, 그녀가 피난처로 삼은 도시 한가운데를 흐르는 강을 그렸습니다. 1938년 부부는 보헤미아의 작은 도시 흐로노프로 옮겼고, 4년 뒤 두 사람은 그곳에서 이송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