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반니 모키
1831–1892 · 토스카나 대공국, 이탈리아 왕국 · 아카데미 미술, 사실주의
이야기
1875년 7월 파리에서, 그곳에 주재하던 칠레 공사이자 소설가였던 알베르토 블레스트 가나가 마흔 몇 살의 피렌체 화가와 계약을 맺었다. 산티아고로 가서 회화 학교를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조반니 모키는 피렌체의 아카데미아에서 배웠고 1850년대 내내 그 도시에서 역사화를 선보였는데, 단테가 화가 조토를 소개하는 1855년 작도 그중 하나다. 1860년대에는 파리 살롱에 출품했고 1870년 보불전쟁이 끝난 뒤에도 프랑스에 남아 있었다. 계약 이듬해에 배를 탔고, 칠레에서 그는 후안 모키가 되었다.
그는 회화 아카데미의 세 번째 수장이자 그 자리에 오른 마지막 외국인이었고, 계약은 여섯 차례 갱신되었다. 학생들을 모델 앞에, 그리고 주변의 삶 앞에 세웠다. 그의 화실을 거쳐 간 화가들, 알프레도 발렌수엘라 푸엘마, 알베르토 발렌수엘라 야노스, 후안 프란시스코 곤살레스, 그리고 아우로라와 막달레나 미라 자매는 칠레 미술사가 거장이라고 부르는 세대다. 그 자신의 그림도 현지의 것이 되어 갔다. 산 아래 길 위의 두 기수를 그린 〈칠레의 농민들〉은 오늘날 산티아고의 국립미술관에 걸려 있다. 1880년 의회 건물 위층 방들에 회화 미술관으로 문을 열었을 때 그 운영을 맡은 사람이 그였다. 1887년까지 그 자리를 지켰고 1891년까지 가르쳤다.
그는 1892년 산티아고에서 세상을 떠났다. 태어난 해는 여전히 열려 있다. 1827년, 1829년, 1831년이 모두 활자로 남아 있고, 이탈리아와 칠레 양쪽 문서고를 훑은 2023년의 연구도 결정적인 것을 찾지 못했다. 단테 그림에 대한 피렌체의 목록 카드는 그의 생몰년을 ‘post 1892’로 닫아 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