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욤 기용-레티에르
1760–1832 · 프랑스 · 신고전주의
이야기
기욤 기용-레티에르는 1760년 카리브해 과들루프섬의 생트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프랑스 백인 관리였고, 어머니는 해방된 아프리카계 여성이었다. 그가 그곳에서 프랑스 회화의 정점까지 올랐다는 것이야말로 그의 삶 한복판에 놓인 있을 법하지 않은 사실이다.
소년 시절 수업을 받으러 프랑스로 보내진 그는 신고전주의 세대를 대표하는 역사화가가 되었다. 웅장한 고대 주제와 또렷하고 조각 같은 소묘를 앞세운 양식이었다. 그는 그 시대를 지배한 화가 자크루이 다비드의 정면 맞수였고, 붐비는 교습 화실을 꾸렸으며, 1807년에는 로마 주재 프랑스 아카데미 원장에 임명되었다. 화가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명예로운 자리 중 하나였다. 로마의 덕을 그린 그의 거대한 화폭들, 그중 친아버지에게 사형을 선고받는 브루투스의 아들들은 당대 최고의 이름들과 나란히 살롱에 걸렸다.
가장 사적인 그림은 1822년에 나왔다. 『선조들의 맹세』라 불리는 이 그림은 독립 아이티의 두 건국자, 데살린 장군과 혼혈 지도자 페시옹이 끊어진 사슬 아래서 동맹을 맹세하는 모습을 그린다. 최초의 흑인 공화국이 제 몫의 신고전주의 제단화를 갖게 된 것이다. 레티에르는 이 그림을 조용히 섬으로 보냈고, 그림은 지금도 포르토프랭스에 걸려 있다. 1832년 그가 죽은 뒤 근 두 세기 동안 그 이름은 희미해져 갔으나, 2024년 루브르가 대규모 회고전을 열며 그가 일찍이 제 출신을 두고 쓴 말을 전시 제목으로 삼았다. 과들루프에서 태어나다, 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