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기니아의 죽음

베르기니아의 죽음


상세 정보

제작 연도
1828
기법
캔버스에 유채
유형
회화
크기
458 × 778 cm

이야기

1780년대 말 로마 프랑스 아카데미의 젊은 장학생이던 레티에르는 초기 로마사를 다룬 거대한 그림 네 점을 구상했다. 완성한 것은 두 점이다. 1811년에 끝낸 첫 번째 그림은 바로 이 전시실에 걸려 있다. 지금 보는 것이 두 번째 그림으로, 그는 거의 평생을 이 작업에 매달렸다. 습작은 179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서명은 1828년에야 들어갔다.

이야기는 역사가 리비우스가 전한다. 기원전 449년, 당시 로마를 다스리던 십인 위원 가운데 한 사람인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가 소녀 베르기니아를 노예로 판정받게 해 차지하려 했다. 아버지인 병사 베르기니우스는 포룸에서 칼을 집어 들고, 딸을 넘기느니 차라리 제 손으로 죽였다. 뒤이어 일어난 봉기가 십인 위원을 무너뜨렸다. 레티에르는 치켜든 칼과 관리들, 군중을 그렸다.

그는 너비가 8미터 가까운 이 캔버스를 1831년 살롱에 보냈다. 들라크루아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내놓은 바로 그 살롱이었다. 이듬해 그는 세상을 떠났고, 1848년 수집가 에두아르 부아야르가 이 그림을 루브르에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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