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베르 로베르
1733–1808 · 프랑스 · 낭만주의 전기
이야기
1790년대에 위베르 로베르는 갓 문을 연 루브르 미술관의 대회랑을 두 번 그렸다. 한 그림은 그림과 관람객으로 붐비는 당시 그대로의 모습이다. 다른 그림은 같은 홀을 수백 년 뒤의 미래에 옮겨 놓는다. 지붕은 내려앉고 머리 위로 하늘이 드러나며, 부러진 기둥에는 담쟁이가 기어오르고 잔해 사이에서 자그마한 인물들이 사생을 한다. 그는 당시 이 미술관의 관장이었고, 자기가 운영하는 곳을 웅장한 폐허로 상상했다.
젊은 시절 로베르는 로마에서 11년을 보냈고, 폐허는 그의 온 주제가 되었다. 철학자 드니 디드로는 1767년 살롱에서 그의 로마 환상을 보고 '폐허의 로베르'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 화면에서는 실재하는 기념물도 지어낸 것도 모두 풀에 뒤덮인 돌로 녹아든다. 그는 정원도 설계했는데, 베르사유에서의 작업도 그 안에 든다.
이윽고 혁명이 그를 거의 끝장낼 뻔했다. 1793년 공포정치가 한창일 때 그는 체포되어 열 달쯤 갇혀 있었고, 단두대에 얼마나 가까웠던지 이름이 비슷한 사람이 그를 대신해 처형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1794년 로베스피에르가 몰락한 뒤 풀려나 루브르로 돌아왔고, 1808년 갑작스레 세상을 뜰 때까지 그 회랑들을 계속 그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