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제르맹 드루에
1763–1788 · 프랑스 · 신고전주의, 역사화
이야기
1785년 로마에서, 자크루이 다비드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속 맹세하는 세 형제 가운데 한 명의 팔은 그의 젊은 조수가 그렸습니다. 그 조수가 바로 다비드가 가장 아낀 제자 장 제르맹 드루에로, 스승은 자신을 유명하게 만든 그림의 일부를 그에게 맡겼습니다.
드루에는 화가 집안 출신이었습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모두 파리에서 인기 있던 초상화가였고, 그는 1781년 무렵 다비드가 새로 연 화실에 들어갔습니다. 젊은 화가에게 주는 프랑스 아카데미 최고의 상인 로마상에 처음 도전한 1783년에는 일이 꼬였습니다. 스승의 평을 빨리 듣고 싶었던 그는 경연 캔버스의 한 조각을 잘라 닫힌 작업실 밖으로 몰래 가지고 나갔고, 그 일로 경연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이듬해 그는 〈그리스도와 가나안 여인〉으로 상을 받았는데, 이 그림은 지금 루브르에 있습니다. 그리고 다비드와 함께 로마로 떠났습니다.
로마에서 그린 작품이 1786년에 완성한 〈민투르나이의 마리우스〉입니다. 사형을 선고받은 포로인 늙은 로마 장군 마리우스가 자신을 죽이러 온 병사와 마주한 장면으로, 고대의 전승에 따르면 그 병사는 끝내 칼을 내리치지 못했습니다. 당시 로마에 머물던 시인 괴테는 이 그림이 남긴 깊은 인상을 기록하며, 어떤 면에서는 스승 다비드의 작품보다 낫다고 평했습니다. 폭이 3.5미터가 넘는 이 캔버스는 아카데미의 심사를 위해 파리로 보내졌고, 지금은 루브르에 걸려 있습니다.
드루에는 끝내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1788년 2월 로마에서 천연두로 24세에 세상을 떠났고, 마지막으로 완성한 작품은 〈렘노스섬의 필록테테스〉입니다. 로마 프랑스 아카데미의 동료들은 산타 마리아 인 비아 라타 성당에 그의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