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티슈바인
1750–1812 · 헤센카셀 방백령 · 신고전주의, 독일 낭만주의
이야기
티슈바인 가문은 독일 중부 헤센 출신의 화가 집안으로, 동시에 활동한 사람이 워낙 많아 사람들은 도시 이름으로 그들을 구분했습니다. 요한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티슈바인은 '라이프치히의 티슈바인'이 되었습니다. 그의 작은아버지 요한 하인리히는 '카셀의 티슈바인'이었고, 사촌 요한 하인리히 빌헬름은 로마 근교 들판에 비스듬히 누운 시인의 초상 때문에 지금도 '괴테의 티슈바인'이라고 불립니다.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는 1750년 마스트리흐트에서 태어나 카셀에 있는 작은아버지의 작업실에서 수련했고, 파리에서 공부했으며 로마와 나폴리에도 머물렀습니다. 1780년에는 작은 독일 궁정인 아롤젠의 발데크 제후의 궁정화가가 되었고, 1780년대에 제후는 그를 세 차례 네덜란드 공화국으로 보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최상층의 고객을 얻었습니다. 오라녜 가문의 수장인 총독 빌럼 5세가 1787년 헤이그로 돌아오자, 티슈바인은 그 가족을 타원형 파스텔 초상 연작으로 그렸고, 이 작품들은 지금도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 있습니다.
그의 초상화, 특히 여성 초상은 영국 화가 게인즈버러와 롬니에게 많은 것을 빚지고 있습니다. 부드러운 풍경 배경, 편안한 자세, 사적인 감정이 감도는 분위기가 그렇습니다. 1800년에는 젊은 괴테에게 그림을 가르쳤던 아담 프리드리히 외저의 뒤를 이어 라이프치히 미술 아카데미를 이끌었고, 이 도시 상인 가문들의 대형 초상을 그렸습니다. 그는 1812년 하이델베르크에서 세상을 떠났고, 자녀인 카롤리네, 엘리자베트, 카를 빌헬름 세 사람도 화가가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