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안 안드리선
1742–1819 · 네덜란드 공화국 · 신고전주의
이야기
1805년부터 1808년까지 암스테르담 암스텔강 가에 있던 안드리선 집안의 누군가가 그림 일기를 썼다. 가족과 친구, 거리의 생활, 당시의 정치를 그린 소묘 약 700장이다. 1903년 경매에서 흩어질 때 이 종이들은 집안에서 가장 이름난 화가 유리안 안드리선의 작품으로 통했다. 1964년 암스테르담의 기록 연구자 이사벨라 판에이헌이 이것이 아들 크리스티안의 작품임을 밝혀냈다. 그래도 아버지는 그 안에 등장하는데, 한 장에서는 감식가처럼 소묘를 들여다보고 있다.
유리안 자신의 길은 12살에 장식화가 안토니 엘리허르의 도제로 시작되었다. 16살에는 초상화가 얀 마우리츠 크빙크하르트 밑에서 한 해를 보냈고, 1766년에는 암스테르담 시립 소묘 아카데미에서 1등상을 받았다. 초기의 큰 주문 가운데 하나가 하를럼 근교의 시골 저택 하위스 터 만파트를 위한 것이었는데, 그곳의 홀 하나는 지금도 그가 그린 벽걸이 그림으로 둘러싸여 있다. 복원은 2023년에 시작되었다.
그는 가르치기도 했다. 제자 중에는 1810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풍경화가 바우터르 요하너스 판트로스트베이크, 그리고 크리스티안 자신이 있었다. 유리안 안드리선은 1819년에 세상을 떠나 암스테르담의 옛 루터교회에 묻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