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노 산라쿠
1559–1635 · 일본 · 교카노파
이야기
1615년 오사카성이 함락되면서, 가노 산라쿠가 어린 시절부터 섬겨 온 무장 가문 도요토미 집안도 무너졌습니다. 그는 일본의 통치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시동으로 출발했는데, 히데요시는 그의 그림 솜씨를 눈여겨보고 당대 최고의 화파를 이끌던 가노 에이토쿠에게 그를 보냈습니다. 에이토쿠는 그를 양자로 들였고, 그는 미쓰요리라는 이름으로 도요토미 가문의 성과 사찰을 위해 그림을 그렸습니다.
오사카 함락 뒤, 패한 쪽과 그토록 깊이 얽혀 있던 그는 물러났습니다. 머리를 깎고 승려의 모습이 되어 산라쿠라는 이름을 썼습니다. 네 해쯤 뒤 그는 교토에서 다시 붓을 들었는데, 이번에는 새 지배자 도쿠가와 가문을 위해서였습니다. 쇼군의 딸 도후쿠몬인이 천황과 혼인하는 데 맞춰 황궁의 방들을 그린 것입니다. 그녀의 거처였던 건물은 훗날 교토 서쪽의 사찰 다이카쿠지로 옮겨졌고, 금박 바탕에 그린 그의 커다란 모란은 지금도 그 미닫이문을 채우고 있습니다.
다른 가노파 화가들이 쇼군을 따라 동쪽 에도로 옮겨 갔을 때 산라쿠는 교토에 남았고, 그의 계통은 교가노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묘신지 사찰의 용호도 병풍에는 그의 힘찬 면모가 드러납니다. 지금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는 1630년의 병풍 한 쌍 〈금산도와 서호도〉는 양쯔강의 섬 사찰과 항저우의 호수라는 중국의 두 명승을 먹과 채색, 금으로 그린 차분한 작품입니다. 그는 교토의 계통을 사위이자 양자인 가노 산세쓰에게 물려주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