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냉 형제

프랑스 왕국 · 프랑스 바로크, 바로크, 풍속화


이야기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작은 캔버스 한쪽 구석에 화가는 "Lenain f. 1642"라고만 적었다. 이 꾸밈없는 성이 르냉 형제를 둘러싼 핵심 수수께끼다. 앙투안, 루이, 마티외 삼형제는 프랑스 북부 피카르디 지방의 언덕 도시 랑 출신으로, 1630년 무렵에는 셋 모두 파리에서 앙투안이 연 하나의 작업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림은 공동의 성으로 세상에 나갔고, 연도가 적힌 작품은 15점 정도만 남아 있는데 모두 1640년대의 것이다. 그 뒤로 연구자들은 각 형제의 손길을 가려내려 애써 왔다.

〈행복한 가족〉, 일명 〈세례식에서 돌아오는 길〉은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 준다. 농민 가족 삼대가 식탁에 모여 있고, 아버지는 잔을 들어 올리며 어머니는 아이를 안고 있다. 시골 사람들을 고요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그린 이런 장면들이 1640년 무렵 형제의 이름을 알렸다. 루브르의 설명은 루이의 영향 아래 작업한 마티외를 작가로 보는 쪽에 기운다. 일부 인물이 루이의 구도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미술사학자 자크 튀일리에는 한 화면에 여러 사람의 손길이 담겼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물관은 또 아이가 당시의 세례를 받기에는 나이가 많아 보인다며, 옛 제목이 오해를 부를 수 있다고 적고 있다.

1648년 세 형제는 파리에 새로 세워진 왕립 회화 조각 아카데미의 창립 회원이 되었다. 같은 해 5월, 루이와 앙투안은 이틀 간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막내 마티외는 1677년까지 살았다. 이후 형제의 명성은 희미해졌는데, 같은 랑 출신이자 화가 쿠르베의 친구였던 사실주의 비평가 샹플뢰리가 1850년과 1862년에 발표한 연구로 이를 되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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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작품 3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