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옹 오귀스탱 레르미트
1844–1925 · 프랑스 · 자연주의
이야기
1882년 파리 살롱 개막일에 프랑스 정부가 큰 유화 한 점을 사들였다. 부엌 식탁에서 하루치 임금을 받는 농업 노동자들을 그린 그림이었다. 이 구입으로 서른일곱 살의 레옹 오귀스탱 레르미트는 제3공화국에서 농사일을 그리는 화가가 되었다. 화면의 배경은 그가 초등학교 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마른 강가의 마을 몽생페르이고, 그림 속 사람들은 그의 이웃이었다. 카지미르 데앙이라는 일꾼은 그 몇 해 동안 그곳에서 그린 그림 세 점에서 같은 얼굴로 알아볼 수 있다.
파리로 나온 것은 1863년, 프티 에콜이라 불린 무료 국립 소묘 학교였다. 그곳에서 오라스 르코크 드 부아보드랑은 로댕과 화가 팡탱라투르를 포함한 제자들에게 장면을 외운 뒤 모델 없이 다시 그리는 훈련을 시켰다. 목탄과 파스텔은 평생 레르미트에게 유화만큼 자연스러운 재료였다.
반 고흐는 그 작업의 상당 부분을 삽화 잡지로 알았다. 1885년 뉘넌에서 그는 파리 주간지 『르 몽드 일뤼스트레』에서 레르미트의 구도를 잘라내며, 친구인 네덜란드 화가 안톤 판 라파르트에게 이 사람은 말 그대로 제2의 밀레라고 썼다. 프랑스 농민을 그린 대가 장프랑수아 밀레가 세상을 떠난 것은 그 십 년 전이었고, 반 고흐에게 그보다 높은 이름은 없었다. 테오에게는 자신이 감탄한 대목을 이렇게 적었다. 레르미트는 인물을 빛에서부터 세운다, 렘브란트가 그랬던 것처럼.
시골 주제는 세기말까지 이어졌다. 파리 식료품 시장 레 알의 붐비는 아침을 그린 큰 그림은 1895년 살롱에 나갔고, 처음에는 파리 시청에 걸렸다가 1904년 프티 팔레로 옮겨졌다. 1905년 그는 화가 장자크 에네르가 비운 자리를 이어받아 미술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