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이즈 키슬링
1891–1953 · 오스트리아-헝가리, 프랑스 · 에콜 드 파리
이야기
1914년 6월, 두 폴란드 화가가 명예를 둘러싼 다툼 끝에 파리 외곽의 벌판에서 검을 맞댔다. 그중 하나가 당시 스물세 살로 크라쿠프에서 갓 올라온 모이즈 키슬링이었다. 그날 그의 결투 입회인은 젊은 멕시코 벽화가 디에고 리베라였다. 두 사람 모두 가벼운 상처만 입고 살아남았고, 이 결투는 몽파르나스의 초창기 전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키슬링은 1910년 파리에 와서 좌안의 화가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한때는 화가 쥘 파스킨과 한 건물을 썼고, 이탈리아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와 가까이 살았는데, 모딜리아니는 그의 친구가 되어 1916년에 그의 초상을 그렸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아직 외국 국적이던 키슬링은 프랑스 외인부대에 자원했다. 1915년 솜 전투에서 중상을 입었고, 그 복무의 대가로 프랑스 국적을 얻었다.
그는 초상과 꽃, 비스듬히 누운 누드를 에나멜처럼 단단하고 매끄러운 표면과 맑고 밝은 색으로 그려, 1920년대에 가장 인기 있는 화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유대인이었던 그는 1940년 독일군이 침공하자 다시 프랑스를 떠나 전쟁 기간을 미국에서 보냈다. 이후 남프랑스로 돌아와 1953년 지중해 연안의 사나리쉬르메르에서 세상을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