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콜로 디 리베라토레
1502 · 교황령 · 움브리아 화파
이야기
대부분의 안내서는 그를 알룬노라고 부르는데, 이 이름은 잘못 읽은 데서 나왔다. 그는 1430년경 태어난 움브리아의 도시 폴리뇨의 산 니콜로 성당을 위해 1492년에 그린 제단화에 '니콜라우스 알룸누스 풀기니아이', 곧 '폴리뇨의 아들 니콜라우스'라고 서명했다. 16세기의 미술가 전기 작가 조르조 바사리는 이 라틴어 단어를 별명으로 오해했고, 그 이름이 그대로 굳어졌다. 그의 본명은 니콜로 디 리베라토레다.
그는 폴리뇨의 화가 피에트로 디 조반니 마차포르테의 공방에서 일을 배웠고, 마차포르테는 훗날 그의 장인이 되었다. 1465년에는 두 사람이 함께 칼리의 제단화를 주문받았다. 폴리뇨를 근거지로 그는 다폭 제단화와 행렬용 깃발을 움브리아의 언덕 마을들로, 또 아펜니노산맥 너머 마르케 지방으로 보냈다.
1492년의 그 제단화는 훗날 먼 길을 떠났다. 파리 나폴레옹 미술관의 관장 비방 드농이 1810년 루브르를 위해 이 작품을 골랐고, 1817년 조각가 안토니오 카노바가 패널 대부분을 폴리뇨로 되찾아 왔다. 수난 장면을 담은 프레델라는 파리에 남았다. 말년에는 아들 라탄치오가 곁에서 함께 일했고, 1502년 니콜로가 세상을 떠났을 때 미완성이던 「성 바르톨로메오의 순교」는 라탄치오가 완성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