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스페르 마리야
1811–1847 · 프랑스 · 자연주의, 오리엔탈리즘
이야기
1831년 10월, 프랑스 중부 오베르뉴의 마을 베르테종에서 태어난 스무 살 풍경화가가 오스트리아 박물학자 카를 폰 휘겔 남작이 이끄는 학술 탐사대의 화공으로 동방으로 떠났다. 이 일은 1833년 5월까지 이어졌고, 프로스페르 마리야는 그리스, 시리아, 레바논, 팔레스타인, 상이집트를 돌았다. 그는 소묘첩 10권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 소묘첩이 남은 이력을 모두 먹여 살렸다. 1834년 살롱에 그는 '카이로의 에즈베키야 광장'을 냈고, 젊은 작가 테오필 고티에는 그 그림을 보고 아직 발을 들여본 적도 없는 동방을 향한 향수로 앓았다고 적었다. 그 문장은 지금도 마리야의 이름과 함께 인용된다. 그가 실제로 캔버스에 올린 것은 그보다 건조했다. 모스크의 폐허, 거리, 야자수를 동시대 사람들이 거듭 언급할 만큼 정확하게 재어 옮겼다.
말년에는 매독으로 정신이 불안정해졌고, 1847년 서른여섯에 세상을 떠났다. 살롱에 마지막으로 출품한 해는 1844년이다. 그는 집에서 가까운 곳도 계속 그렸는데, 이탈리아와 프로방스, 자기 고향 지방의 풍경이 그것이다. 1838년 작 '양이 있는 농가 마당'은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