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럼 바르텔 판데르 코이
1768–1836 · 네덜란드 공화국, 네덜란드 · 신고전주의
이야기
피아노 앞에 앉아 있던 소녀가 의자 위에서 몸을 돌렸습니다. 연습하던 중에 어린 사내아이 둘이 뛰어들어 왔기 때문입니다. 빌럼 바르텔 판데르 코이는 1813년 높이가 1.5미터에 가까운 캔버스에 이 장면을 그리고, 자신이 구상하고 그렸다는 뜻의 라틴어 서명을 남겼습니다. 스냅 사진처럼 보이지만 세 아이는 삼각형 구도로 세심하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이 누구인지, 애초에 초상화인지조차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의 출발은 소박했습니다. 1768년 프리슬란트의 마을 아우휘스티뉘스하에서 태어나 12살에 동네 페인트공들에게 도제로 들어갔고, 이어 프리슬란트의 주도 레이우아르던의 장식 화가 밑에서 일하며 소묘도 배웠습니다. 1798년에는 프리슬란트의 대학인 프라네커르 대학의 소묘 교사가 되어, 1811년 프랑스 당국이 대학을 폐쇄할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1804년에는 뒤셀도르프로 가서 선제후의 회화관에서 그림을 모사했습니다.
인정을 받은 것은 1808년입니다. 당시 홀란트 국왕이던 루이 보나파르트가 전국 미술 공모전을 열었고, 판데르 코이의 풍속화 〈연애편지〉가 1등상을 받았습니다. 1813년부터 레이우아르던에 자리 잡은 그는 1818년 국왕 빌럼 1세와 왕비를 직접 마주하고 그렸으며, 183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도시에서 소묘를 가르쳤습니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은 1869년 레이우아르던의 H. 판데르 코이에게서 〈중단된 피아노 연습〉을 기증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