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코프 치글러
상세 정보
이야기
위쪽 명판에는 라틴어로 '란다우의 야코프 치글러의 초상'이라고 적혀 있는데, 당시 학자들이 좋아하던 고대풍 글자체다. 치글러는 1470년 무렵 바이에른의 이자르강 변 란다우에서 태어나 인문주의 시인 콘라트 켈티스에게 배웠다. 빈에서 신학을 가르쳤고, 1532년에는 지도를 곁들인 성지 지리서를 펴냈는데, 그 가운데 한 장은 가장 이른 시기에 인쇄된 스칸디나비아 지도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에라스뮈스와 편지를 주고받았고, 에라스뮈스처럼 종교개혁가들에게 공감하면서도 가톨릭교회를 떠나지 않았다. 로마에 머문 뒤로는 교황청을 날카롭게 비판했고, 나중에는 개신교도들과도 갈라섰다. 늘그막에 그는 파사우 주교의 보호 아래 몸을 의탁했고, 후버는 그곳에서 1544년에서 1549년 사이 어느 때 그를 그렸다. 치글러는 1549년 8월 파사우에서 세상을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