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assily Kandinsky · PD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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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1930년 무렵 칸딘스키는 데사우의 바우하우스에서 가르치고 있었다. 예술가를 산업 시대의 디자이너처럼 사고하도록 이끌던 학교다. 그런 태도는 그가 쓰는 재료에까지 스며들었다. 복원 전문가들은 그가 이 무렵부터 문이나 라디에이터를 칠하려고 시중에 팔던 광택 에나멜 도료 리폴린을 화면에 섞어 쓰기 시작했고, 자신의 작품 목록에 ‘유화 플러스 rip’이라고 적어 두었음을 밝혀냈다. 이 공업용 도료의 단단하고 고른 광택은 여기 보이는 기하학과 잘 어울린다. 허공에 뜬 원과 정확한 막대 모양은 초기 추상을 가득 채우던 색채의 폭풍을 대신한 것이다. 두 해 뒤 정치적 압력이 바우하우스를 데사우에서 몰아냈고, 칸딘스키는 독일을 떠나 파리로 갔다. 이 그림은 지금도 그곳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