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은 여성의 초상
상세 정보
이야기
19세기의 상당 기간 이 그림은 비앙카 카펠로의 초상으로 통했다. 베네치아 출신으로 토스카나 대공비가 되었고, 1587년 10월 남편 프란체스코 1세 데 메디치가 죽은 이튿날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1860년 포조 임페리알레 목록은 그녀의 이름으로 이 그림을 올렸다. 나중에 지목은 한 세대 아래로 내려가, 비앙카가 첫 결혼에서 낳은 딸 펠레그리나 보나벤투리에게 옮겨 갔다. 1577년 13세에 울리세 벤티볼리오와 혼인한 여인이다. 미술관은 이쪽도 물리친다. 이유는 간단해서, 얼굴이 비앙카 집안의 초상들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술관 기록이 보증하는 것은 베네치아 화가의 손과 1590년대라는 연대뿐이다. 캔버스는 세로 64센티미터, 가로 50센티미터이고 지금은 미술관 수장고에 있으며, 포조 임페리알레의 옛 번호 790을 그대로 달고 있다. 언젠가 893에서 고쳐 쓴 번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