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안셀무스와 성 마르티노가 함께한 원죄 없는 잉태

성 안셀무스와 성 마르티노가 함께한 원죄 없는 잉태


상세 정보

제작 연도
1734
기법
캔버스에 유채
유형
회화
크기
234 × 130 cm

이야기

크레스피가 이 제단화를 그린 것은 대략 1730년에서 1737년 사이의 어느 때였다. 그 무렵 피아첸차의 산 시스토 수도원 베네딕도회 수도사들은 여전히 이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을 지니고 있었다. 두 세기 전 라파엘로가 그들의 성당을 위해 그린 성모화였다. 그로부터 20년쯤 뒤 수도사들은 이 그림을 작센 선제후이자 폴란드 왕인 아우구스트 3세에게 팔았고, 1754년 시스티나의 성모는 드레스덴으로 떠났다. 크레스피의 그림은 성당에 남아 있다가, 피아첸차가 프랑스의 지배 아래 있던 1803년에 떼어져 프랑스로 옮겨졌다.

두 성인은 베네딕도회 성당에 잘 어울리는 인물들이다. 수도사로 출발해 캔터베리 대주교가 된 성 안셀무스는 마리아가 잉태되는 순간부터 원죄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믿음, 곧 원죄 없는 잉태 축일을 널리 퍼뜨린 인물로 오랫동안 여겨졌다. 투르의 성 마르티노는 로마 군인에서 주교가 된 성인으로, 갈리아 지방에 초기 수도원 여러 곳을 세웠다. 높이가 2미터를 넘는 이 그림은 프랑스에 온 뒤 1874년부터 1954년까지 80년 동안 콩피에뉴 성에 대여되어 있었다.

이 이야기를 소리로 들어 보세요. 앱 받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