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 최후의 만찬
상세 정보
이야기
1643년 포르루아얄의 대표적 신학자 앙투안 아르노가 『잦은 영성체에 관하여』를 펴냈습니다. 성체를 받으려면 깊은 내적 준비가 필요하며 결코 가볍게 받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었고, 이 책은 프랑스 교회에 긴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포르루아얄은 파리 남서쪽의 수녀원이었고, 1647년 공동체는 '성체회'라는 이름을 택했습니다. 샹파뉴는 이 수녀원 성당의 주제대를 위해 이 「최후의 만찬」을 그렸습니다. 그는 이야기 가운데 수녀들의 신심이 집중된 장면, 곧 그리스도가 성체성사를 세우는 순간을 골랐습니다. 구도는 판화로 널리 퍼진 라파엘로의 도안을 잇고 있으며, 1618년부터 파리 생뢰 성당 제단 위에 걸려 있던 프란스 푸르뷔스의 「최후의 만찬」을 참고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 그림도 지금은 루브르에 있습니다. 루브르는 두 가지 연대를 제시합니다. 작품 정보의 머리글은 1662년경, 박물관의 해설은 1652년경입니다. 게다가 리옹에 있는 더 큰 판본도 이 제단을 위해 그린 그림으로 발표된 적이 있습니다. 그 뒤의 일은 분명합니다. 그림은 혁명 때 몰수되었고, 1793년 루브르가 미술관으로 문을 열 때 이미 걸려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