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후안 데 푸에르토리코 탈환
상세 정보
이야기
에우헤니오 카헤스는 1634년 12월, 이 화폭을 그리다 만 채로 세상을 떠났다. 미술관이 제작 연도를 한 해가 아니라 1634년에서 1635년 사이로 적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 뒤의 일은 문서로 남아 있다. 1635년 3월 화가 안토니오 푸가는 부엔 레티로 궁전 알현실에 걸릴 전투화를 카헤스의 집에서 함께 작업했다고 진술했고, 4월에는 카헤스에게 배운 루이스 페르난데스가 스승이 시작해 놓은 그림을 마무리한 대가로 800레알을 받았다. 스페인 미술사가 앙굴로와 페레스 산체스는 구도 자체가 궁정화가 비센테 카르두초의 손에서 나왔을 수 있다고까지 보았다.
그려진 사건은 1625년 가을의 일이다. 바우데베인 헨드릭스가 이끈 네덜란드 함대가 푸에르토리코의 산후안 시가지를 점령했고, 총독 후안 데 아로는 수백 명으로 항구 어귀의 엘 모로 요새를 지켰다. 네덜란드 측은 시가지에 불을 지르고 바다로 물러갔다. 앞쪽에 서 있는 인물이 아로다. 그로부터 두 세기 가까이 지나 이 그림은 제정기의 루브르, 곧 나폴레옹 미술관으로 뽑혀 간 50점 중 하나가 되었고, 1816년 6월 프랑스에서 돌아와 1827년에 미술관 소장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