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모 카타피기(피난처)와 복음사가 성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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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1395년 봄, 헬레나라는 이름의 비잔티움 황후가 아버지를 잃었다. 로비네 전투에서 스러진 발칸의 영주 콘스탄틴 드라가시였다. 이 판은 그를 기리는 그녀의 기념물이었다. 성모 마리아와 신학자 성 요한이 나란히 서 있고, 성모 곁에는 붉은 글씨로 드문 칭호가 적혀 있다. 카타피기, 그리스어로 '피난처'를 뜻하는 말이다. 이 말은 비잔티움 미술에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학자들이 아는 것은 온 전통을 통틀어 단 세 곳뿐이며, 이 이콘이 그 마지막이다. 아래쪽 봉헌 명문은 기증자를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황후 헬레나'라 적어, 그녀가 굳이 넣지 않은 자기 초상을 대신한다. 판은 양면에 그려져, 뒷면에는 그리스도의 환시가 있다. 포가노보의 신학자 성 요한 수도원을 위해 만들어졌고, 뒤에 소피아로 옮겨졌다. 헬레나가 이것을 주문한 때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바로 그해, 오스만이 불가리아 차르들의 옛 수도 터르노보를 빼앗은 지 두 해 뒤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