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샤를 드 라 포스
1636–1716 · 프랑스 왕국 · 바로크
이야기
샤를 드 라 포스가 1650년대 파리에서 그림을 배우던 무렵, 프랑스 미술에는 공식 규범이 있었고 그것을 세운 이는 다름 아닌 그의 스승이었다. 루이 14세의 수석 화가 샤를 르브룅은 소묘와 명확한 구성이 먼저이며 색채는 한낱 장식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라 포스는 왕의 비용으로 이탈리아에서 여러 해를 보내며 티치아노와 베로네세를 공부했고, 정반대의 확신을 품고 돌아왔다. 색채야말로 한 폭의 그림을 떠받칠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그는 따뜻하고 빛나는 살결을 그린 플랑드르의 거장 루벤스를 흠모하던 화가들을 조용히 이끌었고, 더 가벼운 로코코 취향으로 가는 길을 연 아카데미의 오랜 논쟁에서 승리하는 데 힘을 보탰다.
오늘날 남은 그의 가장 큰 작품은 머리 위에 있다. 1705년 그는 파리의 앵발리드 교회, 곧 퇴역 군인을 위한 성당의 거대한 돔 안쪽을 그렸는데, 성 루이가 그리스도에게 검을 바치는 장면을 저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수많은 인물의 소용돌이 속에 담았다. 베르사유에서는 아폴론의 방에 《일출》을, 디아나의 방에 《이피게네이아의 희생》을 남겼다.
1690년대 한동안 그는 런던에서 영국 귀족을 위해 몬터규 하우스를 장식했다. 말년에는 수집가 피에르 크로자의 집에 머물며 유럽에서 손꼽히는 회화 컬렉션에 둘러싸여 지냈고, 1716년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