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크사버 메서슈미트
1736–1783 · 신성 로마 제국 · 신고전주의, 바로크
이야기
1781년, 베를린의 출판인이자 독일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인 프리드리히 니콜라이가 프레스부르크, 지금의 브라티슬라바에 사는 한 조각가를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 프란츠 크사버 메서슈미트는 금속과 설화석고로 만든 수십 개의 두상에 둘러싸여 있었고, 두상마다 저마다 다르게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습니다. 니콜라이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본떠 두상을 만들었고, 표정을 끌어내려고 자기 몸을 꼬집었으며, 자신을 괴롭히는 영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은 두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전하는 유일한 당대의 증언입니다.
니콜라이가 만난 이 사람은 한때 제국의 수도 빈에서 이름을 떨친 조각가였습니다. 조각가 집안인 슈트라우프 가문의 외삼촌들에게 배운 메서슈미트는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와 남편 프란츠 슈테판의 금을 입힌 조각상을 만들었고, 학자와 의사들의 초상도 제작했습니다. 그중에는 동물 자기설을 주장한 의사 프란츠 안톤 메스머도 있었습니다. 1774년 빈 미술 아카데미는 교수직 선임에서 그를 배제했고, 그는 곧 수도를 영영 떠났습니다.
그는 1770년 무렵부터 178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두상을 만들었습니다. 작업실에서는 약 69점이 발견되었습니다. 1793년 그중 49점이 빈에서 전시되었는데, 〈하품하는 사람〉이나 〈위선자와 중상모략가〉 같은 제목은 그가 붙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1932년 미술사가이자 정신분석가인 에른스트 크리스는 이 두상들을 정신 질환의 증상으로 해석했고, 이 해석이 20세기 내내 지배적이었습니다.
2025년 벨베데레의 전시는 이 해석을 한쪽으로 밀어 두었습니다. 큐레이터들은 두상들을 18세기의 얼굴 표정 연구 흐름 속에 놓고, 영국의 풍자화가 윌리엄 호가스의 판화와 나란히 보여 주며, 메서슈미트를 변화하는 사회에 응답한 궁정 예술가로 소개했습니다. 벨베데레는 이 두상 가운데 16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그 전시에서는 여덟 점이 공개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