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얀 페르콜리에
1650–1693 · 네덜란드 공화국 · 네덜란드 황금시대 회화, 바로크, 메조틴트, 풍속화, 초상화
이야기
네덜란드 화가들의 초기 전기 작가 아르놀트 하우브라컨에 따르면, 얀 페르콜리에가 그림의 길에 들어선 계기는 한 번의 사고였습니다. 자물쇠공의 아들로 암스테르담에서 자란 소년 시절 다트 놀이를 하다 발을 다쳤는데, 상처가 잘 낫지 않아 오랫동안 침대에 누워 지내며 심심풀이로 판화를 베꼈다고 합니다. 뒷날 그는 화가 얀 리번스의 아들 얀 안드레아 리번스에게서 여섯 달쯤 그림을 배웠습니다.
프랑스와 그 독일 동맹국들이 네덜란드 공화국을 침공한 1672년 '재앙의 해'에 그는 델프트로 옮겨 그곳에서 결혼했습니다. 1673년 지역 화가 조합에 들어갔고 여러 차례 조합장을 지냈습니다.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의 1674년 작 '전령' 같은 풍속화와 델프트 명사들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그 가운데에는 런던 왕립학회 회원 증서와 함께 그려진 현미경 연구의 선구자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의 초상도 있습니다. 페르콜리에는 메조틴트에도 뛰어나서, 1686년 이 초상을 판화로 옮겼습니다.
그는 1693년 43세로 델프트에서 세상을 떠났고, 아들 니콜라스가 화가로서 뒤를 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