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베르나르트 셰퍼
1765–1809 · 신성 로마 제국, 네덜란드 공화국 · 신고전주의
이야기
1808년, 형 나폴레옹에 의해 홀란트 국왕이 된 루이 보나파르트는 요한 베르나르트 셰퍼를 암스테르담의 궁정 화가로 임명했다. 셰퍼는 국왕의 초상을 그렸지만, 그 자리를 지킨 것은 1년뿐이었다. 1809년 7월 그는 암스테르담에서 처음으로 개신교 예배를 위해 지어진 교회인 자위더르케르크에 묻혔다. 40대 중반의 나이였다.
셰퍼는 독일 헤센 출신으로, 초상화가 요한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티슈바인에게 배운 뒤 네덜란드 공화국으로 건너왔다. 1788년부터 위트레흐트에서, 이어 도르드레흐트에서 활동했고, 1794년 그곳에서 세밀화가 코르넬리아 라머와 결혼했다. 가족은 이후 헤이그와 로테르담을 거쳐 1803년 암스테르담에 자리 잡았다. 그는 초상화와 가정 장면, 그리고 몇 점의 대형 역사화를 그렸다. 새로 세워진 바타비아 공화국의 첫 의회 의원 레오나르뒤스 판 데르 포르트를 그린 초상화는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 있다.
그의 죽음으로 코르넬리아는 생활이 어려워졌다. 1811년 그녀는 맏아들 아리를 데리고 파리로 옮겨 갔다. 아리는 당시 16살이었고, 훗날 프랑스에서 이름난 낭만주의 화가가 된다. 이듬해에는 두 어린 아들도 파리로 와서 합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