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타 고린

1658–1716 · 일본 · 린파


이야기

오가타 집안은 교토의 포목상 가리가네야를 운영하며 궁중 여인들의 옷을 지어 바쳤고, 고린은 그 집 둘째 아들이었다. 그는 옷본책과 노 연극에 둘러싸여 자랐고, 1687년 아버지가 죽자 재산을 물려받았으나 그 상당 부분을 지방 영주들에게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했다. 그림을 직업으로 삼고 자리를 잡은 것은 마흔이 넘어서였다. 1701년 그는 홋쿄의 지위를 받았는데, 당대의 직업 화가들이 격을 나타내는 표시로 지녔던 불교식 명예 칭호였다. 1704년에는 주문이 몰리는 에도로 옮겨갔다.

이 병풍의 장면은 『이세 이야기』에서 나왔다. 10세기의 이야기들을 모은 책으로, 교토의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수도를 떠나 낙향하던 한 남자가 야쓰하시에 이른다. 냇물이 여덟 갈래로 갈라지고 갈래마다 널다리가 놓인 곳이다. 제비붓꽃이 한창이고, 일행은 그에게 도읍에 두고 온 아내를 두고 노래를 지으라 청한다. 각 구절의 첫 음절이 제비붓꽃을 뜻하는 가키쓰바타 다섯 자를 이루는 노래였다. 고린은 이 장소를 두 번 그렸다. 1701년 무렵의 앞선 병풍 한 쌍에는 금박 바탕에 붓꽃만 있다. 이 작품은 1709년 교토로 돌아온 뒤의 것으로, 다리를 다시 불러들여 각진 널판의 행렬이 두 폭을 가로질러 지나가고, 나그네들은 빠져 있다.

삭은 나무의 결은 다라시코미로 처리했다. 먹이 채 마르기 전에 안료를 떨어뜨려 번지고 얼룩지게 하는 기법으로, 한 세대 앞선 화가 소타쓰에게서 배운 것이다. 고린은 1716년 이름은 알려진 채 돈에는 쪼들리며 세상을 떠났다. 한 세기 뒤 그의 밑그림을 모아온 화가 사카이 호이쓰가 추모 전시를 열고 그의 도안 100점을 간행했으며, 고린 자신의 이름을 딴 린파 양식이 19세기까지 이어진 것은 대체로 그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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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작품 5점